현직 고인 물 개발자가 느낀 “이 바닥 좁다”의 진실
“이 바닥 좁다”라는 말 한 번쯤은 다들 들어보셨죠?
상사와의 갈등이 있을 때, 그만둘 때, 술자리에서 잔소리 들을 때 등등… 주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말이라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닙니다.
“이 바닥이 좁긴 좁더라. 몇 년 전에 같이 일했던 개발자가 옆 사무실로 왔네?” 이런 뉘앙스의 “이 바닥 좁다”도 있긴 합니다.
세상이 얼마나 넓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이 바닥이 좁다는 거냐고 할 수도 있지만 마냥 헛소리라고 볼 수도 없는 말입니다. 제 경험을 토대로 개발자 세계에서의 “이 바닥 좁다”라는 말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해볼게요.

그거 그냥 겁주려고 헛소리하는 거야.
솔직히 “이 바닥 좁다.”라는 말 들었다고 주변에 말하면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 많을 겁니다. 저도 한참 동안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떤 상황에서는 이 바닥이 좁기도 하다는 걸 점점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바닥 좁다”라는 말이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단 저는 약 6년 동안 SI/SM/솔루션 위주의 중소기업 3곳에서 정규직으로 일했습니다. 각 회사는 모두 업무 분야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 곳은 통신, 한 곳은 클라우드 솔루션, 한 곳은 공공 SI… 개발이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분야는 완전 다르죠? 이때까지는 “이 바닥 좁다”라는 말은 ‘역시 헛소리다. 그냥 겁주려고 그러는 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6년이 지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SI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냥 급여와 근무 지역, 계약기간 같은 것만 맞으면 바로 계약했기 때문에 다양한 업무 분야를 떠돌아다녔습니다. 은행, 사내 소규모 내부 프로젝트, 콜센터 솔루션, 반도체 등등… 이렇게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다 보니 개발 환경도 제각각이고, 업무 도메인 지식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놓은 개발자를 우스갯소리로 다이소 개발자라고도 하더군요.
9년 차쯤 됐을 때도 어느 때와 같이 급여와 근무 지역, 계약기간만 보고 또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됐습니다. 이곳의 업무 분야는 물류였습니다. 프로젝트가 많은 회사에 가서 무난하게 해서 그런지 같은 회사에서 몇 년간 프로젝트만 바꿔가면서 계속 일했습니다. 이때부터 슬슬 “이 바닥 좁다”가 어느 정도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A 수행업체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본 케이스
- 서로 다른 회사더라도 예전에 같은 프로젝트를 해서 서로 안면이 있다.
- 현재 수행업체에 계신 분의 이전 회사 상사가 프로젝트 총괄 PM이란다.
- 고객사 담당자가 현재 수행업체에서 이전에 근무했었단다.
A 수행업체에 일이 없어서 B 수행업체 프로젝트로 간 후 본 케이스
- 면접 보러 가는 길에 예전 A 수행업체 프로젝트에서 같이 일했던 프리랜서 분을 만났다. “저랑 같은 프로젝트 면접 보셨네요…”
- 예전에 A 수행업체 프로젝트에서 같이 일했던 프리랜서 분에게 전화가 왔다. “여기 네 이력서 들어왔네?”
- 새로 투입된 프로젝트의 수행업체 사장님이 예전에 A 수행업체 직원이었다네.
- 저기 건너편에 있는 개발자도 A 수행업체에서 예전에 정규직으로 일했었대.
- PL도 예전 A 수행업체에서 일했었다네…
- 고객사 담당자가 예전 A 수행업체 프로젝트에서 봤던 분이다!
B 수행업체 계약이 끝난 후 추천으로 C 수행업체 프로젝트로 간 후 본 케이스
- “다 들어서 면접이 필요 없다네요.”
- 여기 이사님도 A 수행업체 출신이라네.
- C 수행업체와 B 수행업체가 같은 프로젝트 한 적이 있어서 서로 안면이 있다네.
- 여기 고객사 담당자랑 전 프로젝트 고객사 담당자 서로 아는 사이네.
C 수행업체 계약 종료 후 D 수행업체로 간 후 본 케이스(추천 아님)
- 면접을 갔더니 이전 프로젝트에 있던 사람 이름을 대면서 알고 있냐고 묻는다.
- 이력서를 훑어보면서 이 회사 누구누구 알고 있냐고 묻는다. 알고 있는 사람 이름이 나온다!
- 얘 어떻냐고 전화해 본 듯… 이것이 개발자 평판 조회인가?
이력서에서부터 컷!
실제로 예전에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개발자의 이력서가 들어오기도 하고, 이력서에 아는 회사 이름 나오면 전화해서 물어보는 경우가 꽤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적을 만들면 안 됩니다.
“이 바닥 좁다” 어떨 때 헛소리이고, 어떨 때 헛소리가 아니게 될까?
하나의 업무 분야로 계속 일을 하다 보면 “이 바닥 좁다”가 점점 느껴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업무 분야를 계속 변경하면서 다녔다면 경력이 오래됐어도 헛소리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이 바닥이 좁아서 좋은 점도 있다.
저는 솔직히 운이 좋아서 물류라는 도메인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물류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대우를 조금 더 잘 받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특히 SI는 업무 경험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좁은 바닥에서 오래 놀다 보면 분명 이득이 있습니다.
다른 개발자들의 의견은 어떨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189073
https://okky.kr/articles/1146020
클리앙과 okky에도 관련 글이 있네요. 다른 개발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 봐보세요.
마무리: 개발자 평판 관리 중요하지만 너무 겁먹지는 마세요.
저는 물류라는 나름 좁은 바닥에서 프리랜서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이 바닥 좁다”라는 말을 온몸으로 느꼈지만, 다양한 분야를 오가거나 업무 도메인이 아닌 기술이 중요한 분야에 계신 분들은 또 “이 바닥 좁다”라는 말을 전혀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론은 아무리 이 바닥이 좁다고 해도 또 넓기도 합니다. 그냥 개발자 평판 관리를 잘하면 덕 볼 일이 은근히 있고, 잘못하면 손해 볼 일이 은근히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너무 힘들어서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데 “이 바닥 좁다”라는 말 때문에 무리하게 버틸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구직 시에 약간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거지 업계에서 일을 하기 힘들어질 정도의 일이 생기거나 그럴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개발자 잡담” 카테고리에 쓴 글이기 때문에 조금 난잡한 글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바닥 좁다”라는 말에 대해서 한 마디씩 댓글로 남겨주세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